감히 후처가 어딜 전처를 넘볼수 있었습니까?? 

후처는 항상 전처 뒤에 숨어서 있어도 없는 척,  전처의 그림자도 밣지 말아야 하는  전처의 존재는 막강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전처의 막중한 존재감이  현대 사회의  막강했던 남성의 지위가   세월이 흐르면서  나약해지는  남성의 존재감과 같이 공멸을 하는 존재로  점점 변해갑니다!!  

왜 그럴까요?/

 

감히 주제넘게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때 필수 과목으로 배웠던 국사에 대해서 조금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수렵 사회가  주를 이루었던 사회상은 남성이   사냥을 해서  여자와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당시 사냥을 잘하는 남자는 여자들이  꼬였습니다. 그러다 남자가 사냥을 나가 다치거나 깊은 산속에서  죽게되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남편을 기다리다  굶기를 밥먹듯이 하다보니 사냥을 해서 갔다주는 옆집 남성에게  마음을 주게 됩니다.  그러다 같은 지붕아래 살면서 애를 낳니다. 그런  남편이 사냥을 나간 이후 또 함흥차사가 됩니다. 그러다 보면 여자는 여러 씨가 다른 아이를 기르게 됩니다. 리는 역사에서  이것을 적당하게 미화해서 모계 사회의 태동이라 부릅니다.

 

문명이 발달을 하면서 신석기 시대로 들어가고 수렵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변하면서  사유 재산이 생기게 됩니다.  힘들게 벌어 만든 사유 재산을 지키려다 보니  법이 필요하게 되고  마을에서  나이 많이 드신 어른이  급한데로 법을 만들고, 집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좀더 체계가 잡힌  공권력이  필요하게 되면서 소위 말하는  행정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사유 재산 제도가 생기고 돈이 주머니에 돌자 남자들은  한눈을 팔기 시작을 합니다.  소위 말해서  지금과 의미가 다른 내연의 관계 여성( 후처 )을 두기 시작을 합니다. 남자들이 후처 제도를  합법화 하기 위해 소위 칠거지악 이라는  남성 위주의  법이 있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세월은 흘러 흘러  현대 사회로 접어듭니다.

여성의 교육열과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그또한 같이 경제력이 갖추어 지게 됩니다. 남편이 소리만 지르면 쥐구멍이 어디냐!! 하며 숨죽이며 살던  여성들이 이제는  같이 맞대응을 합니다.  과거 남자들이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미명하에  아내 이외에 다른 여성에게 눈길을 주는 것을  아내들은 경제력이 확보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아이를 보고  참으면서 삽니다. 그러던 아내들이  높은 교육을 앞세우며 사회에 진출을 하더니  경제력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허리에 차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밖에서 딴짓을  하는 것을  빌미로  이혼을 신청을 합니다.  남자는  가급적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재산의 반이  아내의 몫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양육비도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는 생리적인 이유와  외적인 많은 이유로 인하여  혼자 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재혼을 하게 됩니다. ( 지금부터  전처와 후처라는  용어로  시작을 하려 합니다. 전처와 후처에 해당하시는 분들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오니 필자의 뜻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남자는 정해진 봉급에  전처의 spousal support와 양육비 를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을  후처에게 가져다 줍니다!!

남편의 봉급 봉투를 받아든 후처는 눈이 튀어 나옵니다!! 아니 머리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핍니다!! 아니 뚜껑이 열립니다!! 후처의 입장으로 봐서  전처는 일도 안하고 아이를 핑계로 빈둥빈둥 놀면서  자기 남편의  등골을 빼는 전처가 밉기만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후처(?)들은 Second Wives Club!!  이라는 단체를 구성해  후처들의 권익을 지키려  정부에 탄원을 합니다.

 

이런 후처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전처들은  갖은 교태로 본인의  전남편을   침대에서 녹이는 동안  전처들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니 마땅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후처들의 움직임에 위험을 감지한   전처들은 First Wives First!! 라는 단체를 결성해  그들의 이익을 지키려 맞불 작전에 돌입을 합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전처와 후처들이  전남편 혹은 현재의 남편의 월급 봉투를 놓고  일대 전쟁을 벌이는 모습입니다.

 

필자는 근간 미국에서 벌어지는  재정문제로 얽힌 전처와 후처와의 전쟁을  우리 대한미국의 사회상에 견주어 바라볼까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현존하는 실제의 인물을 등장을 시켜   현장감을 극대화 했습니다!!






위의 화보는 아래에 전개되는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Debbie Leff Israel는 요새 머리가 터질 정도로  이픕니다....  가끔 하는 생각이 고등학교 다닐때 수학을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싱글이었던  Debbie Leff Israel 는 친구의 소개로 좋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흠잡을데 없는 남자 이었습니다.  그녀의 남자 친구인 John Kelapire 은 수학 교수입니다.... 말이  친구지 이미 두 남녀는 한 지붕아래

한 침대를 쓰는  법적인 부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 친구인 John Kelapire 는 한번의 이혼 전력이  있습니다.

이혼이 무슨 큰 대수입니까?  이미 알고 잇는 사실인데....  그런데 문제는 John Kelapire는 전 부인에게 그가 버는  봉급의 1/3을

spousal support를 지급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현재  Debbie Leff Israel는 남자 친구의  봉급때만 되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녀는 현재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있는 커리어 우먼 입니다,.  현재 결혼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Jan Kilillea 은 플로리다 출신 입니다!!  후처들의  단체인  Second Wives Club의 결성에  전처들의 권익에  위험을 느낀 나머지

First Wives First!!  즉 전처 우선!!  이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후처들의 로비 활동에 맞불을 놓는 그런 장본인 입니다,.

자!!  그런  Jan Kilillea 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그녀는 지난 20년동안  아이를 키우며  결혼 생활을 한  전업 주부 ( stay-at-home mom ) 였습니다.    그녀는 결혼 당시  그녀이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가정에 충실했었습니다.   그러나 이혼후 그녀는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니라는  아이 돌보는 직업을

택하게  되지만  벌이가 그리 시원치 않게 됩니다.  이혼 판사는 이러한  Jan Kilillea의 사정을 고려하여  전 남편에게  그녀에게

평생 spousal support를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린 겁니다.  전 남편은 전 부인에게  그녀가 재혼을 하기전까지 이혼 수당을  지급을 해야

합니다. (  그런데 이런 점을 이용을 하여  남자 혹은 여자 친구와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민 하는 실제 부부 생활을 같이 하면서 

전 남편에게  혹은 전 부인에게 이혼 수당을 챙기는 그런 그룹들도  있습니다. )

그러니 Jan Kilillea는 후처들의 움직임에 고운 시선을 보낼리리는 만무합니다.

 

그녀가 거주하는  플로리다의 주지사는  후처들이 제출한  청원을  일단 거부를 했습니다만  후처 그룹들은 다시 청원을  제출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귀추가 주목이 됩니다.  또한 뉴저지 주는  이러한 법안이  곧 상정이 되어  열띤 토론이  있을거라 이야기도 합니다.

 

 

이혼수당( support spousal )은 서구에서 12세기 '경제권을 독점한 남편이 부인을 버리더라도 생계는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확립됐는데  20세기 후반부터 합의이혼이 급증하고 여성들의 학력과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이 여전히 가사·육아를 전담해 직업 경력이 단절되기 쉬우므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반대론도

팽팽하다  합니다.





Posted by Pathfinder LiveU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신용카드 제도라는 것은 소비자나 그것을 이용해 돈장사(?) 하는 은행에게는 편리한 제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용만 잘하면 한없이 편리한 제도요,  잘못 사용을 하게 되면 남아있는 가족에게 전화나 편지를 해 못살게 구는 그런 몹쓸 제도이기도 합니다.  경기가 좋고  직업이 안정되어  수입에 문제가 없으면  채무 상환에 별 지장이 없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추심 회사의  전화 등쌀에 좌불안석인 경우가 허다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조폭 집단의  추심에 생명까지 잃는 경우가 있고 젊은 여성의 경우엔 성적 도구로 사용케 하여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게 만듭니다. 

 

남자의 경우요??  새우잡이 배를 타야 하거나, 저 전라도 해안가에  있는 염전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장기 매매를 요구를 합니다!!  장기 매매는  불법입니다만   신용 카드 제도가  한국에 들어온 후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이  음성적으로  이용을 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바다 건너 중국에 여행을 갔다 실종이 된 어느 신혼 부부의 시신이 발견이 되었는데 시신은 발견이 됐지만 장기가

송두리채 적출이 되는 그런 경우도 있다 하고,   중국의 사형수는  사형 후에  바로 장기 적출을 할수있게 구급차 안에서  사형을 시키고  그 장기는 판매를 하여  국가 수입으로 충당을 한다 합니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이  중국으로  장기 이식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인도에서 발생을 했습니다!!

가끔 인도에서는 버스를 타고 가는  어느 여자가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기사가 예사처럼 올라오고   곳으로 여행을 갔던 외국 여성들도

인도 남성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장기가 적출이 되어 버려진 시신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장기를 적출을 당한  사람이  8살 먹은 어느 소녀여서 우리의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아래에 전개되는 내용은 인도에서 벌어진 어느 소녀의 장기가 적출이 사회에 던져준 파장과  근래 이유없이 사라진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으 실종 신고도 이런 내용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봅니다!!





2014년 저술되어진 중국 장기 적출에 대한 "대학살" 이라는 소설로 장기 적출에 참여한 중국 의료 관계자 100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소설임!!




영국에 거주하는  어느 인도 가족이  인도로  휴가를 갔었습니다.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이 가족에게 벌어진

겁니다.  어느날  8세인 Gurkiren Kaur,이  심한 탈수 증세를 보여  India’s Punjab region에 있는  병원을 찿았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진단과 함께  주사를 맞고 안타깝게 사망을 한겁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  시작을 합니다.

 

딸의 시신과 영국으로 돌아온  부부는  아이의 신체 장기가 모두 적출이 된 사실을  보고 놀란 나머지  경찰 당국에   신고를 했고,

경찰 당국은  조사에 들어가게 되고 언론에 보도가 된겁니다.  가족이 사는 Birmingham, England 지역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조사를 요청을 하는 서한을  정부에 발송을 했고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맨처음 보도한 Birmingham Mail newspaper는  1994년에 금지된 장기 매매가 아직도  음성적으로 성행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를 하고  적극적인  취재에 임하였는바  그 가족의 친구인  정치인의 이야기를 빌려  어린 소녀의 죽음은  사고사가 아니라

장기 적출을 위한  살인이었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Birmingham City Councillor Narinder Kooner는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이와 유사한 경우를 당한 가족을  찿아 인터뷰한 바 그 가족들

하는 이야기가   병원 당국에서는 아무  설명없이  죽음을 앞준 환자의 장기를  적출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언론 당국에 이러한 내용의 정보를 전한겁니다.

 

Gurkiren Kaur는 처음으로 부모의 고향을 방문을  한겁니다.  당시 그 아이는 가벼운 탈수 증세를 보였고  근처에 있는

병원을 방문 의사의 진단과 함께  주사를 접종 받았는데 잠시후 눈동자가  뒤로 돌아가고   바로 아무 반응이 없이  사망을 한겁니다.

엄마인 Amrit, 그리고 아빠인 Santokh는 너무 급한 나머지 아이를 업고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담당 의사가

하는  말  "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검사를 했지만  이미 사망을 했다고 판단을 한겁니다.

후에  부모는 아이의 시신을  영국으로 운송을 했습니다.  영국 법에 의하면  영국 시민이  외국에서 사망을 하면  검시를  본국에서

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에 의해  아이를 검시를 했는데 검시 당시 아이의 시신에서 모든 장기가 적출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그  소식을 접한  아이의 부모는  해당 병원에 연락  아이의 병원 기록을 요구했지만 병원 당국은 아이의 모든 기록이  분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합니다.  또한 아이에게  주사를 놓은 의사에게 어떤 종류의  약물을 투여 했는지를  질문을 했지만  담당 의사는

대답 하기를 거절했다 합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이에게  접종을 한  그 의사는 아이의 치료는  뒤로 미루고  오직 자기 딸의

장기에 관심이 있었지 않느냐??  라고 이야기 합니다.  만약 검사를 위해 장기를 적출을 했다면  그 장기는 어디 있느냐??  라고

울부짖으며  이야기 합니다. 가족의 친구인 Kooner 는 장기를 찿아 사망 원인을  밝힐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의 조사를  완결지을수 없을거다 이야기 합니다. 또한 그 아이의 부모는 Birmingham Mail.에 이야기 하기를  분명 우리의 딸은  사고사가 아니라 장기 적출을 위한  살인 이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사건을 접한 영국 외무성은 조사가 끝날때까지  어떠한 코멘트도 할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서의 장기 적출은 반드시 가족의 허락과  본인이 생전에   장기 적출을 허락을 한다는  서명서가 있어야 가능하고

미국에서도 이런 합버적인 내용으로 행정 당국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매년 200만의 장기  적출이 이루어 진다 합니다!!

합법적인 장기 적출은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희망이 됩니다. 그러나 불법적인 장기 매매는  윤리적으로

받아 들여질수 없는  범죄 행위입니다.   이러다간 외국 여행을 갈땐 본인의 장기를  집에 보관하고 가거나  장기에 자물쇠를

채워야 하는 그런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Pathfinder LiveU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냥 말 그대로 데이트 입니다!!!!  며느나 사위가 되는게 아직은 아닙니다!! 

 

밤을 낮을 삼아  일요일도  평일같이 일을 한  미주 한인 1세대의 모습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니  모든 식솔들이 새로운 세계에 접하다보니 두려웠던게 사실입니다.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러다보니 조그마한 내 사업체도 마련이 되고 그래도 내 집이라고 조그마한 나의  보금자리도 마련이 됐습니다.

 

다행히도 강포에 싸여 엄마품에 안겨  비행기 트랩을 내렸던 딸아이,  내손을 꼬오옥 잡고  비행기 트랩을 내릴때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던 아들놈도 이제는  어엿한 성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애비 에미  속한번 안썩히고 원하는 대학을  졸업을 하고  들어가기 힘들다던 미국의 번듯한 직장도 나보란듯이 들어갔습니다.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 생각을 하고 내가 한국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던  무슨 직장을 다녔던  미국에 와서  호구지책을 면하다보니  그건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식한테 기대를 할수밖에요.....

 

항상  공부만 하라 했습니다. 또 아이들도 부모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게  잘 따라주었구요. 같은 교회에 다니는 김선생의 딸이 과년을 한데  시집을 가지 못한다고  김선생은 볼때마다  걱정스런 투로 이야기 합니다. 아들만 둘을 둔 남선생은  에이!!  학교 다닐때 연애좀 하지!!  뭐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투덜됩니다. 아이들이 주류 사회에 무사히 편입이 되기를 기대를 했고 또 그런  경제적인 토양을 마련해 주기 위해  밤을 낮삼아 일을 했고   공부만이 최고다!!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대학가서 사회에 나가서  시작을 해도 늦지 않다!!

라고 생각을 했던  김선생이나 남선생!!  그게 곧 나의 모습이 될거라 생각을 하니  밤에 잠이 안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 녀석이 아니 딸아이가  결혼을 하겠다 하며 집으로 black woman 혹은 black man을   데리고

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글쎄요!  겉으론 아닌척 하겠지만 속으론 무척 불편하시리라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필자는 가끔 그런 종류의 글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제일 인종 차별을 많이 한다고. 미국에 거주하는 미주 한인들은 피부로 느꼈던 아니던간에 한두번씩은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만약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거라는 이야기가 아마 중론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당사자의 몫이 되는 순간에는 얼굴에 어떤  표정이  나오게 될까요?  Interracial marriage!! 소위 다른 인종간의 이야기인데, 결혼이라는 이야기  근래에 자주 보는 광경입니다만  만약 그것이 당사자의 몫이라 하면 ?

 

필자는 오늘  이런 interracial marriage을 다룬  주류의 기사가 있길래 그동안 자식을 키우고 대학을 보내고  이젠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  제몫을 하는   2세들이  직면하게 되는  결혼 문제에 대해서 올린 주류의 기사와  근래 우리 주위에서 볼수있는 비교 할수있는  내용으로 미주 한인 가정의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가 될거라 생각을 하여   나름 묘사를 해보았습니다.

물론 기사의 내용은 이민 가정만을 상대로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류 사회에서도  우리가 생각을 하는 Interracial marriage에 대해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래의 내용은  어느 black mother이  책의 내용을 보고  본인이  아들에게  바라고자 했던  생각을 질문 형식과 원작자의  대답 형식으로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근래 당신이 저술한  " Mixed Kids Are the Cutest!!  Isnt't Cute??"  라는 내용을 읽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무척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런데 조금 더 나아가 생각을 더 해봅시다!! 만약 피부색이 검은 다른 나라에서 출생을 한 소녀가 성장을 해서  당신 아들과 데이트를 해 결혼을 한다면 과연 용납이 될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게  죄송하지만 바로 접니다!!

 

저는 아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와 제 남편인 아이의 아빠는   피부가 검은 two black parents 입니다.  저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만 항상 아들에게 blackmate와 데이트를 하라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저에게 많은 분들이 인종 차별을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아들에게 피부가 다른  인종은  항상 상위의 인종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을 시켜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하는 것은 내가 이들에게 너무 지나친 기대를 갖는 걸까요??

 

이상은  흑인 엄마가  아들에게  갖는 기대감을  이 책을 보고 그 작자에게  질문을 하는 내용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이런 질문을  받은 원작자가  이런  질문 내용을 토대로  현재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런 내용을  글로 표현을 한겁니다.

 

틀린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러한 접근 방식은 혼란감을 부추길수 있게되는 촉진제 역활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black women 에 대한 선호도와  아름다움이 저평가가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저평가 된 내용을 다시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의 아들이 여성에 대한 낭만적인 내용을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본인의 견해라는 잣대로  재려는 당신의 잘못된 생각을  일깨우쳐 주려합니다.

 

당신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아직도  일부 미국인들은  interracial relationships 혹은  marriage에 대해  불편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Aimee Meredith Cox, a cultural anthropologist and assistant professor of African-American studies at Fordham University에 의하면   매번 이런 상황에 접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야기 하며  Black mothers 들은   이런 문제로  아들 딸들과 많은  불협화음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한 중압감과 선입견을 버리기 위해선  제가 몇가지 방법을  논해볼까 합니다.

첫째 현재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이런 엄마의 압력과 중압감에 시달린다면  오히려 역으로 나올수가 있게 됩니다. 반항을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둘째는   엄마의 요청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는  내용은 아들의 몫은 아닙니다!!   아들의 인생은 그가 스스로 결정을 하고 헤쳐 나가게끔 가이드만 잡아주면 됩니다. 결정은 아들의 몫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아들이  black-girl contingent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기를 바랍니까??  결국 아들의 사회적인 안목을 좁게 만드는  일입니다.

 

당신의 그러한 행동은   아들에게 부정적인 메세지만  전달케 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결국 아들은   black 이라는 정체성에 혼돈을 일으키게 된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소수계 여성에 대한 역사가 본질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하는 Baylor University's Mia Moody-Ramirez는 덧붙히기를 그런 생각은 적절치 못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해주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하지   아이가 본인의 정체성에 회의를 갖게 하는 당신의 행동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가지를  더 덧붙힙니다.

 

이상은  black mother이 아들에게   항상 데이트와 결혼은 black woman하고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을 시키는 어느  엄마의  모습을 우리가 자녀의 결혼관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려는   우리 한인 가정의 모습을  black family에   혼기에 찬  이들 딸들을 가진 한인 가정의  본모습을  투영시켜 보았습니다!!

 

 

Posted by Pathfinder LiveU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