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본인이 불치병과 같은 위중한 질병에 대한 진단을 받았을땐  전문가들은 반드시 2차, 3차 소견을 다른 병원에서 반드시 받으라고 권고를 합니다.
그만큼 환자의 생명은 그 어느것과 비교되지 않을만큼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의사를 못믿어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현업에 종사를 하시는 의료 관계자 분들은 분초를 다투어 가며 의료 연구에 힘을 쏟고 있으며 자신의 안전은 뒤로 한체 환자 진료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의료 관계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항상 그와 반대가 되는 부류가 있긴 합니다만 가끔 의사들도 인간이기에 오진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의사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 경우가 발생을 했다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의료 과실이나 혹은 무관심으로 그런 오진이 나왔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실제 그런 의사가 있었고 자신의 몸안에서 암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을 인지를 못하고 오진을 내린 의사와 그것을 모르고 장기간 지내다가 자신의 몸안에서 뼈암이 자라고 있었다는 내용을 안 환자가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지난 2년간 이런 불합리한 의료 과실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본인 자신은 의료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환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  다방면으로 알리는 그런 실제 인물이 있었습니다.

아래에 소개가 되는 내용은 그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자세하게 묘사한 내용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메디칼 저널지에 대한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온 내용을 눈을 크게 뜨고 볼때마다 구역질이 날 만큼 혐오감을 느낀 과정이 지난 2년 동안 계속되었던 겁니다. 물론 저는 의료 전문가는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제가  저를 진찰한 의사의 의료 과실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자 할뿐입니다.

내가 나의 질병을 좀더 공부를 하고자 많은 의료 전문지를 탐독을 했었으며 그중에서도 Grey's Anatomy와 같은 해부학을 다룬 정보는 현란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으며 저처럼 많은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겐 아주 유용한 내용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나처럼 30대에  아주 드물게 발생을 하는 뼈암을 앓고 있다면 나처럼 끊임없이 그런 내용을 알고자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내용중엔 아주 드문 케이스 그러나!!  라는 내용은 나로 하여금 더 이해를 하지 못하게 하는 문구가 나의 눈을 사로 잡았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그 의사를 Dr. Perfect(퍼펙트) 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는  저를 진료한 과거의 의사였었습니다. 검은 머리와 휜머리가 적당하게 배합이 된 중후한 모습에 콧날을 오똑하고 자부심이 대단하고 온화한 웃음을 짓는 그런 의사였었습니다. 내가 ㄱ들어서자 그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친절하게 의자를 권하면서  이야기 하는 첫번째 말이 좋아 보인다!! 흠! 그래야지!!  라는 그의 말을 듲마자 나는 쓴웃음을 지면서  가슴 상부에 꽂혀있는 항암 치료제를 투여하는 호스를 숨기고자 셔치 지퍼를 올렸었습니다. 당시 그가 저를 진료를 했었을때 나의 척추에 암이 자라고 있는 것을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당시의 내용과 진료 과정 그리고 내가 안고있는 질병에 대해서 설명을 장시간을 하면 할수록 그 좁은 진료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나의 목소리는 분명했으며 결코 그 의사에게 무례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고 단지 고개만 영혼이 없이 끄덕이고 쓴웃음으로 대신 했었던 겁니다.  단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 했었던 겁니다.

지난 몇년전 닥터 퍼팩트는 내가 하이킹 도중에 부상을 당한 무릎에 대해 성공적이지 못한  수술을 네번이나  한 이후, 어느날 나를 부르더니 이제 더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이 무엇인지를 물었었으나 당시 나는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가 낙담을 하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줄 알았고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또다른  MRI 대신 항우울증약을 처방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끊임없는 척추 통증으로 고생을 했었고  의사의 적절치 못한 진료 행위를 탓하기 보단 내가 잘못해서 부상을 입었던 내 자신을 원망을 했었던 겁니다. 그땐 지팡이와 강한 진통제 없이는 그로서리 마켓도 가지 못할 정도로 심한 상태였었습니다.

그가 더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저 자신을 치료 대상에서 제외를 했었습니다  나날이 심해가는 통증이 내 심신을 괴롭히는 것을 견디다 못해 나는 다른 수술 의사를 찿아보기 시작을 한겁니다. 당시 내 엑스레이를 본 그 의사는 내 무릎에 남아있는 연골은 17프로 정도만 남아있어  무릎 재생 수술만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연골 재생 수술을 하는 과정의 반쯤 끝이 났었을때 의사는 경골 부분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을 하고 조직을 떼어 조직 검사를 했었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를 본 의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을 한겁니다. 30대 초반에 이런 암이 발생을 하기란 그리 많은게 아니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암은 50대에 들어서야 발병이 되는 암이라고 합니다.)  무릎 재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었지만  나의 암 진행 상태는 그리 좋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또다른 종양이 척추 하단 부분에서 발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종양은 항암 치료로도 종야의 크기를 줄일수 있는게 희박하다는게 의료계의 의견이었지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겁니다.
지난 3년 동안 저는 여러번의 Pet Scan, 수술, 그리고 신약을 통한 임상 실험을 반복을 했지만 암전이는 폐, 간 그리고 신장으로  계속 되었던 겁니다.

당시 나는 그런 암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를 물어볼 힘도 없을 정도로 심신이 항암 치료 과정으로 피폐해져 갔었습니다. 하지만 2주마다 계속되는 항암 치료와 바쁜 일상 생활속에 폐와 간으로 전이가 되었던 암은 사라졌지만 척추 부분에 남아있는 암은 아직 있어 매의 눈으로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지켜보자고 
안심을 시키는 의사의 말에 저는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갈수 있는 용기를 얻었던 겁니다.   신신을 추수린 나는 왜? 이런 상황이 발생을 했는지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연구를 하기 시작을 했었습니다. 특히 나는  증상에 관한한 성차별을 받았다고 의심이 들기 시작을 한겁니다.
그러면서 근래 나와 비슷한 케이스가 될지도 모르는 새로운 내용을 발견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그 기사 내용은 카이저 병원에 대한 내용인데 당시 환자였었던 Anna Rahm은 의사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허리 통증을 수차례 이야기를 했었으나 의사는 MRI와 같은 정밀 검사 대신 체중을 줄여야 허리 통증이 없게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카이저 영양사에게 보내져 허리 둘레의 살을 빼야한다는 기괴한 처방을 받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녀의 허리 통증은 비만에서 온게 아니라 허리에 종양이 자라면서 생긴 통증이었던 겁니다. 그녀의 의사는 그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었고 그 결과 그녀는 오른쪽 다리, 골반의 50프로 그리고 척추 일부를 절단을 하는 비극을 맞게 되었던 겁니다. 이로인해 그녀는 카이저를 상대로 고소를 했었고 그 결과 그녀는 카이저로 부터 2800만 달러의 손해 배상을 받게 되었던 겁니다. ( 당시 그녀의 체격은 5피트 4인치에 몸무게는 125 파운드 나이는 17세 였었습니다. 이 체격이 그 의사에겐 비만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또다른 기사는 나의 시선을 확 끄는 그런 기사였었는데,  Maya Dusenbery가 올린 제목을 보면 "  의료계에서 행해진 성차별로 젊은 여자가 사망을 했다? " 라는 제목인데 내용인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나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그녀의 기사를 보면 자가면역 질환의 75프로는 여성이 차지를 하고 있으며  그들의 반수 이상은 의사들로 하여금 만성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라 낙인(?)을 찍어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진료 행위와 그런 내용을 다룬 기사가 여러 내용이 잇어 그녀는 모든 케이스를 다 탐독을 하면서 자신이 닥터 퍼펙트로 받은 진료와 비교를 하기 시작을 한겁니다.
그러면서 지난 날을 회상하기 시작을 한겁니다. 자신이 대학원 시절 통증에 못이겨 응급실을 방문을 했었을때  당시 의사와 간호사 두명은 나에게 아파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참으면  진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했었고  당시 나는 고통을 참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그들은 마지못해 나에게 CT 촬영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었고  그 이후 그들은 내가 고통을 참지못해 왜? 소리를 질러야 했었는지 CT 결과에서 자명하게 나타났었던 겁니다.
그것은 바로 신장 결석으로 통증이 거기서 부터 시작이 되었던 겁니다. 당시 응급실에 있었던 의료 관계자들은 내가 꾀병을 부리는줄 알았던 겁니다.

나는 내가 읽은 산더미 같이 쌓인 기사를  응시를 하면서  내가 과거 의사였었던 닥터 퍼펙트의 진료 기록서와  그이 지룔로 연결이 되었던 그의 명함을 발견하게 되었던 겁니다.  

일주일 후, 나는 그 미스터 퍼펙트의 진료실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진료 기록서와 영상 촬영 서류가 내 앞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고  그런 서류를 하나 집어든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볼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항암 치료로 다 빠져버린 나의 속눈썹은 다시 자라기 시작을 했었고 일년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짤랐고  밖을 잠시 바라본 나는 그, 어느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의사인 미스터 퍼펙트도 말입니다.
그가 진료실에 들어서자 마자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그는 무척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다 아문 나의 무릎을 보자고 했었습니다. 나는 바지를 걷어 오렸고 그는 물끄러미  나의 무릎을 응시를 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겁니다. 무릎뼈를 가로지른 6인치 정도의 수술 자국은 이미 다 아문 자국이 바로 미스터 퍼펙트 앞에 펼쳐진 겁니다. 잠시 정막이 흐른 후, 나는 미스터 퍼펙트에게 물었습니다. " 나머지 다른 부위도 보여줄까요? 하고 말입니다.

또다른 적막이 다시 흐른 후, 그는 자신의 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숨을 크게 들이시는 겁니다. 그런 다음 나는 단층 촬영을 한 사진을 가르키며  이야기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나의 상태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지를  설명을 하기 시작을 했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결말이 났었는지를 조근조근하게 흥분하지 않고 미스터 퍼펙트에게 설명을 한겁니다. 또 다른 침묵이 흐른 후,  그의 눈초리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찼었으며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침묵으로 일관을 하는 겁니다. 잠시 후,  그는 화제를 바꾸는 민첩함을 보이더니 애매모호한 의료 법률 용어를 현란하게 내뱉으면서 내가 자신을  의료 과실로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할것을 종요을 하는 겁니다. 그로부터 한시간 나는 속사포 같은 질문으로 당신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인지를 해야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나의 증상이 왜 확인이 되지 않았는지, 혈액 검사는 했었는지, 골밀도 조사는 했었는지 더나아가 나의  가족력을 조사를 했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었습니다.

앉아있는 내내 우리는 고통스러웠었습니다. 아니 나만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 나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스릴수가 있었을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겨우 꺼낸 말은 내가 무척 화가 나있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치부를 하는 겁니다.
당시 나의 마음은 뻥 뚫린 것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나는 그의 진료실을 나왔고 행선지도 없이 마냥 걷기만 했었습니다. 당시 나는 교회 앞을 지나치고 있었는데 장례식에 참석을 한 이들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애도를 표하는거 였었습니다. 나의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였고 아무 말없이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로부터 몇주일 후, 나는 남성으로 구성된 암 전문의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몇달 동안 햇볕을 보지 못했는지 모두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내년에 있을 검사 게획을 제시를 햇는데 3개월마다 단층 촬영과 매주 혈액 검사 그리고 매일 복용을 해야하는 처방약에 대해서 심도있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단층 촬영으로 얻어지는 잇점과 후유증 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가지고 서로 논의를 한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는 질문이  이번 주에 있었던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겁니다. 당시 나는 미스터 퍼펙트의 이야기를 할까하다 시간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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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자주 출입을 하는 업무를 하다보니 많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아픔을 가진 당사자들만 아니라 그들 옆에서 묵묵히 보살피는 가족도 함께 보기에 언제 그런 불치의 병이 정복이 되어 이런 아픔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까?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리 의학이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내일 사이에 이루어 지는 일이 아니라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샣해 벽두부터 이런 훈훈하고 아름다운 사연을 올릴수 잇어 그런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용기를 가질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어 그 내용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주위를 한번 둘러 보십시요!!  이런 아픔을 가진 이들이 사방에서 육체적 고통과 불분명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졸필이나마 이런 내용이 그분들과 그분들과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힘이 될수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래에 소개가 되는 내용은 28세 라는 젊은 나이의 여성이 폐암 4기로 미래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극복을 해 자신이 원하던 아이를 가질수 있었던 내용의 과정을 소상하게 정리를 한 내용입니다.
(아래의 화보는 타임지에서 인용을 했습니다)






에밀리 테일러는 결혼 2주년을 맞아  대학 재학시 만났던 남편과 그 결혼 기념일을 계획하던중 앨러지라고 생각을 했었던 기침이 잦아지자  자신의 주치의를 방문을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2일 후,  대학 시절 운동 선수였었고 담배는 입에 대보지 않았던 에밀리는 폐암 4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겁니다.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에밀리는 자신의 병이 위중함에도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희망을 어덯게 해서라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진단을 받은지 2주 후, 그녀는 항암 치료 계획이 잡혀있는과 동시에  의료진들에게 힘든 항암 치료로 인해 자신의 임신 능력이 없어질까 누차 질문을 했었고  이런 힘든 치료 과정 후에 임신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낙담을 하는 아내인 에밀리의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남편인 마일스 테일러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그로부터 몇 주후, 에밀리는 의사에게 부탁을 해 수정란이 착상이 되어 막 자라고 있는 아이의 사진 9장을 어렵사리 구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여기저기에 붙혀놓고 아이를 가지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더나아가 그런 희망이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을 했었던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희망이 서서이 일어났던 겁니다.

현재 31세인 에밀리는  지난 9개월동안 처절한 8번의 항암 치료와 오른쪽 폐를 절제를  하는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 포스팅을 해논 9장의 수정란 착상의 사진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치료를 시작한지 2년 후, 에밀리 주치의는 에밀리와  그녀의 남편에게 이제는 임신을 시도해도 좋다는 언질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임신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여성 홀몬의 증가가 폐암의 재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 에밀리의 주치의는 태아를 에밀리 자궁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을  별로 추천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그런 내용을 의사에게 들은 에밀리는 낙담을 하기 시작을 했던 겁니다.  그러다 자신이 운영을 하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병과 치료 상태의 과정을 소상하게 포스팅을 했었고  이를 본  많은 유저들이 그녀의 블로그를 끊임없이 방문을 했었던 겁니다.  당시 그녀는  체외 수정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그것을 대신 해줄 대리모를 찿는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그녀는 이런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도움을 요청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었지만 쉽사리 결행을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다시 한번 정리를 하고 이런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과 용기를 주는 이들이 있을거라 믿고, 또한 자신이 만약 도움을 받는다면 반드시 이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해 도움을 줄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과감하게 자신이 처한 사정을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었던 겁니다.

글이 포스팅이 되자마자 한시간이 되지 않아 3명의 여성의 댓글이 달렸고  한 주만에 13개의 댓글이 달렸던 겁니다. 그중에서 자신을 가르친 육상 코치인 엔젤라 스타크의 댓글이 눈에 확 들어왔었던 겁니다.  자신의 고교 시절 육상 코치의 이메일을 받았던 순간에 자신의 목이 메었던 당시의 상황을 그녀는 평생 잊지를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20프로 미만의 생존율!!
지난 2012년 에밀리는 계속되는 기침으로  인터넷을 통해 리써치를 한후, 남편인 마일즈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아마 자신은 폐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야기 했었다고 회상을 하는 겁니다. 현재 31세인 그는 아내가 WebMD를 통해 정보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런 증상은 거의 폐암의 전조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마일즈는 그런 찬스는 없으니 그런 사이트는 방문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었다고 합니다.  불안감을 버리지 못했던 에밀리는 의사 진료를 받았고  엑스 레이를 찍었지만 이상 징후가 발견이 되어 CT 스캔으로 이어졌었고  그 결과 오른쪽 폐에 큰 종양이 보았고 조직 검사를 통해 나온 결과는 그녀와 남편을 공포의 순간으로 몰아넣었던 폐암 4기 라는 진단을 받았던 겁니다.

보통 폐암 4기라 하면 전문가들의 표현으로는 시한부 생명으로 판정이 되고 치료보다는 고통을 덜게 하는 호스피스 과정으로 가는 단계라 진단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는 겁니다.  그녀를 치료한 의사인 라자 플로레스는 에밀리 같은 경우의 환자는 항암 치료도 완치보다는 고통을 덜게하는 치료에 전념을 하지 완치는 생각치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거의  완치 희망이 없는 단계라 결론을 짓는다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사의 진단과는 다르게 에밀리는 공격적인 항망 치료를 요구를 했었고 그런 다음 종양이 줄어들면 수술로 절제를 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겁니다.

당시 그녀는 이렇게 회상을 했었습니다. 의사가 내리는 시한부 생명이라는 것은 믿지를 않았고  인간의 생명은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었고  물론 의사가 이야기 하는 내용은 통계에 의한 내용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그녀는 자신이  이 의사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은  당시 의사가 앞으로 있을 항암 치료는 무척 힘이 들거다!  하지만 이 과정은 치유의 첫번째 단계이므로 이 치료를 받고  시작을 하자! 하고 하는 의사의 모습에서 꺼져가는 자신의 희망에 다시 불을 붙힐수 있었다고 회상을 했던 겁니다.

폐암의 완치는 모든 암중에서 제일 희박한 것으로 집계가 되었었고 설사 항암 치료를 한다 하더라도  생존율은 20프로 미만으로 거의 희마이 없었지만 에밀리는 희망을 잃지않고 강하게  버티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희망엔 자신의 아파트 벽에 붙혀 놓았던 애기의 착상 사진이 큰 몫을 했던 것도 부인하지 못했던 겁니다.
지붕 수리 업체에서 근무를 하는 남편인 마일즈는 몇날 며칠 밤을 폐암에 대한 정보가 담긴 인터넷 정보를 써치를 했었고 폐암이 담배를 피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폐암에 대한 치료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확인을 했었던 겁니다. 에밀리를 치료한 의사인 라자 플로레스는  폐암는 담배를 피지 않으면 걸리는 확률이 적다는 일반적인 시선 때문에  담배를 피지 않으면 된다! 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에밀리와 같은 폐암 환자들에 대한 연구 실적이 부족한 상태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에밀리 자신이 항암 치료 후, 종양이 작아지면 수술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술 집도의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었지만 당시 수술 집도의는  수술을 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에밀리와 마일즈는 크게 낙담을 했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부부는 인근에 있는 Applebee 식당에 가서 마가리타를 시켜 마시면서  다른 집도의를 찿자고 서로를 위로를 했었다고 합니다. 몇날 며칠을 인터넷으로 확인 후, 마침내  뉴욕에 있는 흉부 외과 의사인 라자 플로레스가 수술을 하겠다고 하는 언질을 받았던 겁니다.  당시 라자 플로레스는 자신이 수술을 할 부위를 좀 넓혀 우측 폐 전체, 그리고 그 폐를 둘러싸고 있는 횡격막, 그리고 폐와 심장을 서로 분리하고 있는 라이닝도 제거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공격적인 수술과 치료가 될거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고 두 부부는 회상을 했던 겁니다.

수술을 하기 2일전인 2013년 2월 수술후 그녀와 남편인 마일즈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과연 수술대에서 일어날수 있을까? 설사 일어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고 합니다. 수술 하루전 남편인 마일즈는 소위 lung Day라 이야기를 하면서  촛불을 불어 끄는 모습을 보였고 풍선을 불어서 병실에 치장을 해 에밀리를 안시시키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에밀리는 당시의 모습을 회상을 하는 겁니다.

흔지 않은 수술 성공!!
수술을 끝낸 2013년 2월 8일 수술을 담당한 라자 플로레스는 시각적으로 보아 암전이는 더이상 없었고 의하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no evidence of disease 즉 NED라는 판정을 내린 겁니다. 수술이 끝나고 산소 호흡기를 위시한 모든 케이블이 그녀의 몸에서 제거가 되고 정신을 차린 에밀리는 남편에게 자신이 NED 이냐고 물었었고 
그 내용을 수술 집도의인 라자 플로레스에게 수차례 묻고 되물었던 겁니다.  사실 수술을 한 이후 3일 동안 남편인 마일즈는 초조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그녀의 힘으로 호흡을 하지 못해 산소 호흡기에 의존을 해야 했었으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해야 했었으며 그것을 병상에서 지켜본 마일즈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팠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걷는 모습을 본 마일즈는  에밀리가 수술을 한 병원인 Mount Sinai 병원 복도에서 남이 보던말던 너무 기뻐서 춤을 춘겁니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었습니다. 수술을 한 3주 후, 그녀에게 28번 이라는 다량의 방사선 치료가 기다리고 있었고  치료를 받고 힘겨워하는 아내의 옆에서 항상 그녀를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의 모습을 기억하는 에밀리는 자신의 남편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에밀리는 빼놓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
수술을 한 6개월 후, 그들은 인생의 큰 발걸음을 했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일구기 위해  아니 평상시에 늘 꿈을 꾸어 왔었던  자신의 주택을 구입을 했었으며  암을 극복한 이들에게 항상 조언을 주는 전문가의 말에 따라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조심스럽게 2년을 기다려야 했었습니다.
그녀에게 더욱 더 힘을 주었던 것은 자신이 롤린 블로그를 보고 과거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육상 코치였었던 안젤라 스타크가  에밀리가 올린 블로그를 항상 지켜본면서 안젤라가 사는 아이다호 주에 있는 모스코에서 연락을 취해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던 일입니다.

육상 고치였엇던 안젤라 스타크는 기자와 가진 대화에서 자신의 제자인 에밀리의 블로그를 항상 보면서 내가 그녀를 위해서 도와줄수 있는 일이 무었이지를 생각을 했었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관계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고 하면서  그녀의 블로그를 통해서 본 결과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의 힘든 부분을 대신 해줄수 있는 대리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고  이것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수가 있다고 이야기를 한겁니다.

지난 5월 안젤라 스타크와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거주지인 켄터키에서 에밀리와 마일즈가 거주하는 로스엔젤레스로 날아가 만나기도 했었으며 당시 그녀는 15-16년 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은 기분이 들엇다고 엔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에밀리의 고교 육상 코치인 안젤라 스타크는 에밀리의 수정란 착상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지난 9월 2일 임신이 성공적으로 되었으며 산부인과 의사로 부터 딸 쌍둥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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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연치 않게 어제 오늘  암 환자에 대한 내용을 집중 포스팅을 하는 그런 기이한  동시성을 경험을  했습니다.
필자가 그러한 경험을 가까운 거리에서 겪어서인지,  아니면 본래 필자가 블로그를 시작한 연유가  미주 한인이  정보의 부재로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내용을 지근 거리에서 혹은  애틋한 사연이 인터넷에 올라 온 글을 보고  그런 아픔이 있는 분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했었던  블로그의 사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면 반드시 
많은 이들과 공유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앞서 새벽잠을 설치고라도 항상 포스팅을 합니다.
 
아래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시카고에 거주하는 어느 여성의 경우 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Meechy Monroe  입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Tameka Moore 인데  자신의 블로그에서 활동을 하는  이름인 
Meechy Monroe는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여동생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그녀는 5년전 자신이 만든 블로그에서  화학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여성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머리를 빠르게 자랄수 있게 
할수 있다던가, 혹은  그렇게 자란 짧은 머리 카락을 어떤  스타일로 해야 하는지를 블로그를 통해 그리고  유투브 비디오를
통해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준  sourtherb Illiniois Univ를 졸업한  재원이었습니다.  
그녀는 암호나자 였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절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많은 분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필자는 이런 내용을 번역을 하면서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는 생각을 지우질 못했습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와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여성의 이야기는 아래에 펼쳐 집니다!!




흐느끼는 왼쪽의 여성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Temeka Moore 입니다!!




5년 전 Meechy Monroe는  헤어 관리에 대한 그녀의 지식을 온라인에서  펼치면서 인터넷상에서 아니 오프 라인에서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일약 유명세를  떨친 몇 안되는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지식에 열망한 이들은  진정  머리 스타일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과 항암 치료로 머리 카락을 다 잃은 여성들이  그녀의 팬이었습니다.
그녀는 블로그, sns, 그리고 유투브를 통해  그녀의 유명세를 떨쳤으며 그 결과 유투브에서는 240만, 인스타그램에서는 36000명의
follower를 기록을 한거 처럼  그녀는 거의  독보적인 대상이었었습니다.
 
그러던 29세인  그녀에게   미국인의 1퍼선트로 되지 않은 뇌종양을 앓기 시작을 했던 겁니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로 인해  그녀의 모습은 빠르게 변해갔고,  활기찬 그녀의 언변과 정제된 그녀의 문장 솜씨는 점점 
어눌해져만 갔습니다.  잘 정리가 되고, 매력이 있었던 그녀의 머리 스타일 또한  흔적도 없이 다 빠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자택에서 가진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 이게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지나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시작을 합니다.  " 이것은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여행이다!!  나는 나의 피부, 아름다운  얼굴 곡선,
 머리 카락이 다 빠진 현재의 내 머리!!  그래도 난 이런 모습을  나에게 성원을 보내주는 분들에게 숨김없이 다 
보여줄거다!! " 라고 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Meechy Monroe  입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Tameka Moore 인데  자신의 블로그에서 활동을 하는  이름인 
Meechy Monroe는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여동생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그녀는  시카고 남주 지역에서 자랐으며, 
2008년 sourtherb Illiniois Univ을 졸업을 하고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와 마켓팅에 관한 일을 시작을 했었습니다.
 
2009년 그녀는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로  다 빠져 버린 머리카락을 보고선 삭발을 하기로 결정을 했었고, 동네 주변에 있는
미용실 거울안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선  결심을 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리고 같은 아픔을 
지닌  분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용기를 주는 그런 일을 해야 하겠다 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보고  화학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은  여성들의 실망감을 자신과 빚대어  그런 내용으로 시작을 하겠다 생각을 한겁니다. 후에 그녀는 길에서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머리 스타일에 대해  질문을 하며 정보를 얻기 시작을 한겁니다.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시작을 했던 일을  그녀 아빠의 집 지하실에 있는 욕실에서  비디오를 작성 유투브에 올렸고  본격적으로
온라인에  자신의 모습을 알리기 시작을 한겁니다.  빠른 시간에 그녀의 블로그는 파워 블로그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방문을 
시작을 한겁니다.  현재 그녀는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도  이러한 일을 계속을 하는데 방문자가 늘면서  많은  협찬이
이루어 졌으며 그녀가 촬영을 할때마다 사용을 한 비품은 다 협찬을 받은 겁니다.
그녀가 온라인으로 시작을 한 1년 후, 그녀는  미용 업체들로 부터  자사의 제품 사용 후기와  품질을  그녀의 블로그에서 
사용 설명을 해줄것을 정식으로 요청을 받았고  또한 그런 연유로 인해 그녀는 애틀란타와 뉴올리안즈로  출장을 가
시연회를 개최를 할 정도로  성황이었던 겁니다.
 
작년 그녀는 정식으로  해어 스팀머를 제작하는 업체로 부터  홍보 대사로 임영을 받았고 광고 뿐만 아니라 파리와 암스테르담 까지 
날라가  그녀의 헤어 스타일 시연회에 참석까지 한겁니다. 전국적으로 산재한 미용실의 CEO인 Ken Burkeen은 그녀의 모습과
남을 돕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새로운 매력을 찿았었으며 그래서 그녀를  자사의 광고 모델로  채용을 했었고, 동시에
자사가 개발한 미;용 기기를 판매  괄목할 만한  판매량을 이루어 냈었다고 경이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극찬을 했엇습니다.
 
호사다마 라고 지난 4월 어느날 아침 그녀는 이상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기억력이 사라지는거 같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을 한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병원을 찿았으나 아무 이상
내용을 발견치 못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었습니다. 그러던 며칠 후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 겁니다. 그녀의 얼굴 일부분이 심하게 일그러진 겁니다.  병원으로  달려간 그녀에게 의사는  약간의 중풍기가
있으니 검사를  해야겠다고 한겁니다.  후에 몇가지 검사를 한 의료진은  수술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었고  수술을 하려
그녀의 머리를  열어본 의료진은  약간의 중풍이 아니라  뇌종야이 그녀의 뇌를 짖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을 한겁니다.
당시 의료진은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전혀 듣지 않아  수술을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수술후  기약이 없는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의료진은 이야기를 합니다.
 
금년 말  그녀는 뇌종양이 재발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지 모릅니다! ! 언젠간  그녀는 모든 능력을 다 상실을 할지 모릅니다!!
현재 그녀는 뇌종양의 후유증으로 어눌해진 말하기 능력을  복원시키기 위해  언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언어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 나는 제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까지 올수 있었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지금 제가 말을 하고 있잖아요??  처음엔 팔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은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렇게 활발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언어 치료사가 내민  그녀의 가족 구성원을 묘사한 종이 한장을 보더니  머리를 밑으로
떨구더니  흐느끼기 시작을 하며   감정적으로 복받치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치료사에게 다음에 하자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녀가 병마에 시달렸었을때  그녀는 인터넷과 거리를 두었었습니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그녀에 대한 벼라별 소문이 난무를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소식을 알지 못했던  follower들이 여기저기 찿기를 시작을 한겁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안 어느 한 follower가 그녀의 근황을 알리면서  인터넷은 그녀의 쾌유를 비는 내용이 봇물을 이룬 겁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대머리를 가릴 모자를 선물을 하는가 하면, 병원비를 모으자고  시작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미래는 그  어느 누구도 예측을 하지 못합니다. 그녀를 치료한 의료진 조차도  예상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었고 앞으로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 라고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이글을  올리는 저나, 이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 멀리서나마  그녀의 쾌유를 비는 마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많은 시일이 지난 그 어느날,  " Meechy Monroe의 뇌종야은 완전하게 치료가 되었고 이젠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가 
있게 되었답니다!!  " 라는 소식을 이 블로그를 통해  다시 여러분에게 전달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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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부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기 위해  어느 결혼 카운셀링 단체에서 100쌍의 부부를  초청  만약 내가 내일이 마지막이라 생각을 하고
유서를 남긴다면 무슨 내용의 유서를  작성을 할까?  라는 주제로 유서를 작성케 했었는데,  원래  이 단체에서는 갑자기 벌어지는
배우자의 사망으로부터 남아있게 되는 또 다른 배우자의  생존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시작한 모임인데, 서로 유서를 쓰라고 했더니
그동안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부부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바람에 그 모임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주최측이
상당히 난감했었다는 이야기를 본국 언론을 통해 나온 내용을  필자는 본 적이 있었습니다.
 
위에 소개되는 죽음이라는 내용은  만약??  이라는 전제로 유서를 작성을 했던 내용으로  부부간 애틋한  감정을 나타넨 이야기
이지만  아래의 내용은  죽음이 언제 다가오게 된다는  시간을 아는 어느 두 부부의 모습을 그린 내용입니다.
죽음을 담담하고 겸허하게 받아 들이면서  어차피 시한부 생명이라고 하면 굳이 주위 사람에게 심적 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고
안락사의 길을 택하려는 어느 젊은 여성의 모습에서  안락사라는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는 모습을 그릴까 합니다.
 
원래 이 여성은 캘리포니아에 거주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불치의 병을 앓고 있고, 남은 여생이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을 
알고 남편과  반대에도 무릅쓰고  안락사라는 최후의 선택을 했지만  본인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안락사 자체가
허용이 되지 않는 주라  시한부 생명을 사는 이들을 위해  안락사를 허용을 하는  오레곤 주로 이주를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자!!  이 부부에게 어떤 아픈 사연이 있는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지를  아래에 자세하게 묘사를 할까  합니다.




불치의 암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인 브리태니 메이나드는 캘리포니아에서  안락사가 허용이 되는 오레곤 주로  이주를 했습니다.




 29세인 브리트니 메이나드는 그녀가 앓고 있는 뇌종양이 그녀 자신을 죽음으로 몰지 않고 계속 괴롭힌다면  다음달에 
안락사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43세가 되는 남편의 생일이 11월 중에 있으므로
남편의 생일을 같이 보내고  안락사를 인정을 하는 오레곤 주에서  그녀의 생을 마치기를  원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생일이 11월 19일 입니다.
 
그녀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젠 난 30세가 되지만  과연 30세가 될때까지 살아 있을런지 모르겠다!!  사실 안락사라는 최후의 결정을 하기 까지는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 라고 말입니다.
원래 메이나드와 그녀의 남편인  댄은  캘리포니아에서 거주를 했었으나 안락사가 인정이 되질 않자, 안락사가 인정이 되는
오레곤 주로 이사를 했는데 오레곤 주에서는  시한부 생명을 사는 환자에게 의사가 처방을 해준 독극물로  안락사를 하려는
 환자들을  인정하는 안락사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기 보단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시한부 생명을 가진 환자들을 위해  Compassiom & Choices 라는 
단체를 구성  시한부 생명을 가진 환자들에게 생명 선택권을 주자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가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윤리적으로 반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시한부 환자에게  그래도 최소한의 선택을 주자는 생각으로 
이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 이런 캠페인은 미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을 했으며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을 한겁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이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주는 일이고,  사실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다면  삶의 목적 의식은 상실하게 되고 자신이 스스로
할수있는 능력은 이미 많이 상실이 되기 때문에 삶을 놓게 되는 분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생각을  표명을 했습니다.
 
1997년 오레곤은  안락사를 처음 인정한 주입니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독극물로  어떤 외부인의 도움이 없이 환자 스스로가  약을 삼키고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안락사가
인정이 되는 곳이 오레곤 주입니다!!  단 환자 스스로 약을 삼켜야지 옆에서 약을 삼킬수 있게 도움을 주는 행위 자체는 
금지가 되는 안락사 입니다.  의사라  하더라도 환자가 약을 먹을수 잇게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지난 2013년에는 약 750여명의 시한부 생명을 가진 환자가 이러한 방법으로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안락사를 택한 평균 연령은 71세 였고 이중에는   브리트니 메이나드와 같은 34세 미만의 젊은 사람은 6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안락사를 인정을 하는  오레곤 주는  안락사를 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한부 생명 환자가 오레곤으로 모여드는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허나 주정부에서 운영을 하는 웹사이트에는 자주  얼마나 오레곤 주에 살아야 이런  인락사를 선택을 
할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고 하면서 주정부 관리는 거주 기간 제한은 없으며 단지  의사에게 현재
오레곤 주에 거주한다는  증명, 즉 아파트 거주 계약서, 유권자 등록, 혹은 운전 면허증만 있으면 되다는 이야기를 
덧붙혀 이야기를  합니다.
 
브리트니 메이나드는  남편과 새가정을 꾸리려 결혼을 한 신혼 부부였었고 지난 1월 초에  뇌종양 판정을 받았으며
금년 봄에는 의사로 부터 6개월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은 겁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가족은  자신이 선택한
안락사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눈치 였다고 이야기 하면서 발병 초기에는 나 자신을  포함, 모든 가족들이  기적을 바랬고
완쾌가 될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읺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특히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분들은  생명은 ㅇㅇㅇ가 주었기 때문에 안락사는 죄악을  범한다고 해서  극구 반대를 할수 
있습니다. 허나 위의 브리트니  메이나드가 이야기 한것처럼  이러한 불치의 병이 걸리게 되면  삶의 목적 의식과
능역이 상실이 되는데  과연 그러한  마음과 고통을  제 3자가 어떻게 알겠느냐?   라는 반문에 과연  종교적인 신념을 가진 
분들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 대답을 할수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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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서에 위치한 역사적인 기념물
-포인트 서 라이트하우스 (Point Sur Ligh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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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그램!!
 
중년이상의  여성들이 매년  해야되는 유방암 검진 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매년 미국에는  많은 미국 여성들이 유방암으로  사망을 합니다. 유방암의 원인으로는 유전적인 영향도 있지만 
음식과 환경적인 영향도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과거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자신의 유방을 전부 제거를
한 기사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안젤리나 졸리는  그녀의 엄마와 이모가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사망을 해
본인이 거액을 들여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유방암 발병 소지가 다분하다는  데이타를 보고 과감하게  여성의 상징을
절제를 한  그런 케이스 입니다.
 
근래 미주에 거주하는  미주에 거주하는 한인 중년 여성들도 질병의 상태가 점점 서구화가 되어가는 추세라  유방암 발병이
증가를 하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많은 미주 한인 여성들이 이런 질병으로 생을 달리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필자는 미 종합 병원에서 근무를 하는지라  이에 관련된 여러 내용을 보고 듣곤 하는데 저번 주에는 아주 흐뭇한 소식을
들었었습니다.  제가 출입을 하는 병동에  나이가 지긋한 한인 여성 간호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매년 중년 이상의 여성이 받아야 
할 검사를  받는 날이 오늘이라  그날도 야간 근무를 끝내고 시간이 있어 유방암 검사를 받기로  예약을 했었던 겁니다.
마침 야간 근무를 끝낸 동료 간호사가 집으로 갈 차비를 하고 있었기에 그 동료 간호사에게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이야기 했었지만 귀찮다고  하면서 집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구슬려서 인지  같이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뿔사!!
검사를 끝낸  동료 간호사가  그 다음날 한인 여성 간호사에게  전화를 한겁니다.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고 하면서
재검사를 하자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이야기 했던 겁니다. 사실 그녀는 지난 3년 동안  중년 여성이 받아야 할  여성 검사를
전혀 받지 않았던 겁니다. 다음날  의사와의 재검진을 통해서  유방암  초기로 판정을 받았고  유방 한쪽 절제 수술을 할건지 아니면 
두 군데를 다 절제를 할건지를 결정을 하는 자리에서  아예 두 군데를 다 절제를 결정을 했다 하면서, 의논을 하는 자리에서  의사는
검사에 관한 자초지종을   듣자, 웃으면서 그 한인 간호사에게  저녁을 거하게 사라고  환자에게 이야기 하면서  의사 하는 말이
" 너  동료 간호사가 검사를  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 갔었을거고  그럼 후에 너의 안위는 어떻게 되었을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 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합니다.
그후  이 두 간호사의 이야기가 카이저 병원 전체에 퍼졌고  facebook 페이지에도  퍼졌다고 합니다.
 
필자도  그 이야기를 동료들이  하는 것을 들었고  당시 등장을 했었던 검사 방법도  디지탈 메모그램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일반 메모그램에 대해선 많이 들어 보았으나 디지탈 메모그램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그 내용을  원문으로 보고 
분석을 했던 바, 과연 메모그램을 매년 하는 우리 미주 한인 중년 여성들이 위의 두 검사 방법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아는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본인이  메모그램을 매년 하니까  이상이 없을거다!!  라고 생각을 하신다면 그러지 마시고  담당 주치의에게
필자가 이야기 하는 위의 두 검사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문의를 하시기 바랍니다.  의사에게 내가 이런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바
나에게 어떤 검사가 적합한지를 환기를 시키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위의 자세한 두 메모그램 내용은 아래에 자세하게 기술을 할까 합니다.
 






새로운 의학 기술은 점점 진화해 가는 암세포를 정확하게 진단을 해줍니다!!

필자가 이야기 하려는 내용은 이미 지난 2005년에  하버드 여성 건강 센터에서 발표된 논문으로  어제 오늘 사이에
나온  그런 학설은 아닙니다!!  허나 매년 우리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받는 유방암 검사중  어떤 검사로 본인의 유방암 검진에
사용이 되는지, 알고 계신 여성들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바암 검진에 사용되는 의학 기기와 왜? 혹은 어떤 체질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이런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을 할까 합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유방암 검사에 사용이 되는 방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MRI, 울트라 사운드 그리고 디지틀 영상 방식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위의  검사 방식으로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스탠다드 메모그램 방식이 유방암을 찿아내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스텐다드 메모그램이 대세를 이룰 정도로 많이 사용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습니다. 소위 말하는 디지탈 메모그램 이미지 스크린 trial 씨스탬이  스탠다드 메모그램과 쌍벽을 
이루면서 많은 검사소에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것을 DMIST 라 부릅니다. )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 중년 이상의 유방암 검사에 많이 사용이 되는 기기인데요, 그렇다고 스탠다드 메모그램이
DMIST보다 못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러한 DMIST 방식은 유방 조직이  일반인과는 달리 무척 촘촘하게 구성된 유방 조직을 가진 여성의 유방암 검사에 
스탠다드 메모그램 방식보다 더 자세하게  암조직을 발견을 하는 기기입니다.
 
결과 그리고 무엇을 의미를 하는가??
 
이러한 검사 방식으로 폐경기에 접어든 50세 이상의 여성의 유방암 검사에서  조직 발견을 15프로 증가를 시켰으며
촘촘한 유방 조직을 가진 여성의 유방암 발견을 11프로 이상 향상을  시켰다 합니다.
촘촘한 유방 조직을 가진 여성들의 유방 조직은  지방이 적고 다수의 분비샘과 연결된 조직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밀도 조직을 가진 여성들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와 있지만 그 원인은 아직 발견이 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은 악성 종양으로 부터 공격을 당할 소지가 다분하게 있다고 하는데, 이런 조직은  젊은 여성들이 
더 많이 있다고 하며, 50세이상의 여성 30-40프로가 이러한 조직을 지닌  여성들 이라고 합니다.
( 고로 폐경기에 접어든 중년 이상의 여성에게만 유방암 검사를 받게 해야 된다가  젊은 여성들도 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가고 있다 합니다.)
 
또한 일반적인 스탠다드 메모그램을 넘어서서 이런 DMIST 방식은  밀도가 높은 조직을 지닌 여성들의 정상적이지 않은 
유방 조직을  판별을 하는데스탠다드 메모그램보단 특이한 효과를 발휘를 한다고 방사선과 의사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합니다.  도한 나이가 든 여성의 유방 분비샘 조직은 느슨해지기 때문에  스탠다드 메모그램이 통할지는 모르나 
조직이 촘촘한 젊은 여성들이나 혹은 50세 이상이라 하여도  조직이 촘촘한 여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여성에게
스탠다드 메모그램 검사 방식을 들이대는 것은 옮은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은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나??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스탠다드 메모그램을 버리고 DMIST 방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DMIST 방식이 모두에게 일반화 되지는 않았습니다. 비용도 비쌀뿐 아니라 그 기기를 사용할지 아는 
테크니션도 별로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스탠다드 메모그램을 통해서 이상 징후가 발생을 하면 울트라 사운드나 
MRI를 통해서  정밀 검사를 하는 정도입니다.
현재 많은 병원들이 이런 씨스탬을 구축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 입니다.
 
의사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표시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만  최소한 본인이 어떤 체질이며 어떤 종류의
유방 조직인지를  의상게 맡길게 아니라 내 유방 조직이  촘촘한 조직인지, 그러면  위에서 이야기한  검사 방식인
DMIST 검사가 필요한지를 의사한테 여쭈어 보셔야 합니다.  만약 제가 의사라면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전문적으로
물어 보는 환자 A와   그냥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의사한테 모든 것을  일임하는  환자 B가 있다면 아무래도  환자 A에게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줄겁니다.  아!!  그래서 말이 통하는 한인 의사한테 간다구요??  그럼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줍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인종의 의사인지는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영어를 모르면  통역사를 요청을 해  환자로써 본인의 권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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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v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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