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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어느 미주 한인 이야기!!

부업! 그리고 부수입!!

by Wemmerce 2018. 9. 2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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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국 언론을 보면 지난 수십년 동안 살인 혐의로 강도 혐의로 혹은 성폭행 사건의 연류로 인해 수십 년동안 영어의 몸으로 살다 진범이 잡혀서 혐의가 없어서 풀려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대서특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흑인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때 항상 등장을 하는 것이 DNA의 확실한 결과로 무죄가 확정이 되고 진범이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추측컨데 당시 이들이 진범으로 오인을 받을 당시에는 인종 차별이 한창이었던 시절이라 소수 민족의 인권은 거의 인정치 않았던 시절과 무관치 않다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이들이 풀려나면서 대부분 청년 시절에 체포 구금이 되었다가 무죄가 확정이 되면서 거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로 교도소 문을 나서게 됩니다. 꿈이 많았고 혈기가 왕성한 청년 시절을 영어의 몸으로 지냈으니 얼마나 괴롭고 억울했겠습니까마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들의 청춘의 보상금만 손에 쥐고 나오게 되는데 백발이 성성해서 그 돈을 손에 쥐고 나온들 누가 그 피같은 청춘을 보상을 해주겠습니까??


그런 아픈 사연이 다른 소수 민족이 아닌 우리 미주 한인인 이한탁씨가 장본인이 되어 지난 며칠 전, 무죄로 지난 24년간을 뒤로 한체 교도소 문을 나서게 되었던 겁니다. 이러한 내용을 미 주류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마음이 아픈 내용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래에 전개가 되는 내용은 장본인인 81세의 이한탁씨 입니다!!













교도소에서 무죄로 지난 24년을 복역을 한 81세 이한탁씨는 뉴욕 퀸 지역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방 하나에 단촐한 식기로 갖추어진 반지하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지나가는 전철의 소음을 막고자 이중으로 막아논 창문이 그나마 소음을 줄이지만 그래도 소음은 여전히 큰 작은 주거 공간입니다.



그는 지난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자신의 딸을 방화로 살해를 했다는 죄목으로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교도소에서 무기 징역을 받고 지난 24년 동안 복역을 했던 겁니다. 지난 2013년 판사는 그의 죄를 입증을 하기에는 정황이 너무 소설적으로 전개가 되어 급속하게 진행이 되어진 내용을 다시 검토 그를 무죄로 추정 석방을 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그는 현재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만, 당시의 생각을 하면 인생의 한 부분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인터뷰를 한 기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지난 24년 동안 복역을 한 내용을 이야기 하면서 기자에게 그가 체포 당시부터 지금까지 무죄를 주장을 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분노를 토해내는 겁니다.


현재 그는 극빈자에게 주어지는 사회보장 연금으로 연명을 하고 있는데, 그가 복역시 그를 지지를 하는 그룹으로 부터 변호사 비용으로 수만 달러의 지원을 받았고 그가 출소를 하자 그를 돕겠다고 그가 내야하는 월세, 그리고 생활비를 전액 지불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젠 그런 지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 해당 지역의 주 하원인 Ron Kim에게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를 부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기자는 주 하원 의원인 Ron Kim과의 대화를 공개를 했었는데  이한탁씨는 남은 여생을 걱정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경제적인 곤궁을 호소를 했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민자로 현재 미 시민권자인 이한탁씨는 그를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었던 사법 제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털어 놓았으며 그가 옥살이를 했었을때 이혼을 신청을 했었던 과거의 부인에게 강한 불만을 털어 놓았던 겁니다. 이한탁씨를 지원한 그룹의 대변인인 격인 크리스 장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기간의 감옥 생활로 이한탁씨는 남을 의심을 하는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어 그를 지원을 하려는 이들 조차도 의심을 해, 그를 도우려는 분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치 그의 심정은 언제 폭발을 할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덧붙히는 겁니다.


크리스 장씨의 이야기를 이한탁씨는 수긍을 하면서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인정을 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무죄를 이끌어 주기 위해 노력한 모습과 자신에게 자신감을 되찿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도 잊지를 않는 겁니다. 이한탁씨와 가진 두차례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이한탁씨의 편안함과 서글서글한 면을 보았으며 그가 한국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미국에서 힘차게 살았던 이야기를 할때는 비록 능수능란한 영어 구사력은 떨어지지만 즐겁게 이야기를 했었으며 가끔 웃기도 하고 그랬지만 전 와이프와 딸의 이야기만 나오면 금새 얼굴이 굳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이야기 하기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완강하게 했던 겁니다. 사실 그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딸의 전화 번호를  이한탁씨에게 주었고  그는 두번이나 통화를 시도를 했었지만 응답이 없었던 겁니다.


이한탁씨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그리고 현재 그를 지원하는 단체의 부회장인 손경탁씨는 이야기 하기를 이한탁씨는 특별한 개성의 소유자이고, 화를 곧잘 내는 성격으로 주윗 사람들로 부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고 첨언을 하면서 자신은 이한탁씨를 오랫동안 알아서 친구가 아닌 형제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바로 내가 그를 도와야 하는 이유고 현재 그가 의심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 할수있는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 대한 애틋함을 표시를 하는 겁니다.


어느날 그가 거주를 하는 곳에서 화재 경보기가 울렸었던 겁니다. 해당 지역의 경찰과 소방관들은 그가 2개의 백을 들고  그가 거주를 하는 곳의 도로 건너편에 서서 자신의 집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경찰은 그가 자신의 딸에게 방화, 살인을 한 이유로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으며 그로인해 그는 지난 24년 동안 영어의 생활을 했었던 겁니다. 당시 수사관들과 화재를 진압을 한 소방관 그리고 화재 감식관의 증언에 따라 그에 불리하게 전개가 되었었고 그를 변론을 했었던 변호사는 당시 이한탁씨의 딸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 방화를 시도 분신을 했었고 당시 이한탁씨는 잠을 자고 있었으며 화재 경보기 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보니 자신의 딸이 화염에 싸이고 있어서 구하려 노력을 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대피를 한 희생자라고 변론을 했었지만 변론은 재판부에 의해 기각이 되고 유죄 판결을 받아 이제까지 복역을 했었던 겁니다.


당시 그의 재판은 미국의 전 지역에도 화제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관심을 보였던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당시의 사건을 기억을 하는 이들은 현지에 있는 일부 지인을 빼고는 기억을 하는 분들이 거의 없었던 겁니다. 지난 2013년 이한탁씨의 내용이 아름아름 알려지자 해당 지역의 한인들은 "이한탁씨! 구하기!!" 라는 모임을 구성, 그의 구명과 변호사 비용을 위해 기금을 조성, 수만 달러를 조성을 했었으며 부단한 구명 운동을 해, 검찰의 반대에고 불구하고 마침내 석방이 된겁니다. 이한탁씨는 석방이 되자마자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중산층 지역인 Murray Hill 지역에 살고 있는데 그 지역은 그의 누이가 살고있는 지역인으로 가급적 누이와 가가운 곳에서 살기를 이한탁씨는 원했던 겁니다. 현재 그는 일주일에 4번씩 운동과 춤을 배우기 위해 노인 센터에 나가고 있으며 저녁에는 가끔 교회의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고 잇지만 대부분의 생활은 그의 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겁니다.


펜실베니아 주는 장시간 감옥 생활을 하다 무죄로 판명이 되어 석방이 되어도 당사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그런 제도가 없는 주입니다. 또한 이한탁시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 보상을 요청을 하는 소송도 진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은 그가 있지도 않은 죄로 억울하게 지난 24년 동안 영어의 생활을 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있을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당장 이한탁시의 생활은 곤궁하기만 해, 아무리 주위에서 도와주어도 기금은 한정이 되어있어 암울하기만 한겁니다.


현재 그를 지원하는 단체는 한달에 이한탁씨가 내야하는 월세 1000불과 한달 생활비 700불 전부입니다만 그나마 기금이 점점 고갈이 되어 재정난에 봉착이 되었다고 그를 지원하는 단체의 부회장이고 고등학교 친구였었던 손경탁씨는 어려움을 토로를 하면서 이한탁씨를 위해 저가의 아파트와 지원책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기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애타게 부탁을 했었던 겁니다.


현재 지역 주민들과 이한탁시의 친구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찿아가는 이한탁씨!! 그에게 새로운 삶이 빨리 찿아들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청춘을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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